일상2010/02/04 23:30
포항에 내려가 하루를 지내고 나서, 동생이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도 보내줘서 봤는데 애기치곤 괜찮은 듯.

그리고 오늘 서울로 올라왔다. 동생은 병원에서 퇴원해 우리집에 있었다. 친정에서 몸조리 하는게 여러모로 좋겠지. 정말 주먹만한데, 밥 달라고 울고 기저귀 갈아달라고 울고. 아니 그 조그만 몸에서 어찌 그리 큰 울음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밥을 먹을 때는 숨도 못 쉬면서 먹고, 중간에 잠깐 짬을 내서 헥헥대고. 우는 것도 온 몸에 힘을 다 짜내서 우느라 얼굴은 다 빨개진다.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삼십 분에 한 번씩 밥을 먹어야하니? 어떻게 그렇게 우니? 머리카락은 벌써 그렇게 길었어?

괜히 머리만졌다가 놀랬다. 두개골이 아직 다 안 굳었나보다. 머리는 만지는게 아니란다. 포대기에 꽁꽁 싸매놨는데,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좁았다가 밖에 나오면 그런게 없어서 놀랜다고 싸매놓은 거란다. 나도 그랬다니까 뭐.

부모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는 삼촌이 되었다. 얘는 언제 커서 말을 할까?
Posted by 조광현
학회2010/02/02 16:13
아태에 와있다. 갑자기 와서 약간 당황스러울만도 한데, 별로 당황스럽지는 않다. 음. 전엔 잘 안그랬는데, 그냥 가기 전날에 연락드리고 - 가도 돼요? - 오라고 하셔서 다음날 떠나 도착했다. 교수 아파트에서 지내는데 이번엔 같이 방을 쓰는 사람이 없어서리 혼자 넓은 방을 쓴다. 

김영만 교수님과 하는 일이 마무리 단계라서 거의 끝내고 돌아가려 했는데 와서 얘기해보니 방향을 약간 틀어야해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신고와 하는 일은 정말 거의 마무리 단계다. 계산은 거의 했고, 신고가 계혹 확인해주고 있다. 이번 달 안으로 논문 두 개 정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영만이 형은 물리적인 필요에 의해 연구를 진행하시는, 실험 - 즉 실제 현상에서 동기부여를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리고 끈이론 학자들은 보통 수학적인 구조와 모형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가끔 뵐 때 다른 관점에 조금은 연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요즘은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많은 지라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시도되기 마련이고, 의미있는 일이라기 보다는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역시 확실한 동기부여가 연구에 중요성을 더해주는 건 당연하다. 가끔은 할 수 있기 때문에 파보는 것도, 미래를 위해 중요할지 모르지만 현실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조광현
여행2010/01/30 21:19
1월 16일, 토요일에는 세션이 오전 뿐이었다. 오후에는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간 곳은 프라탑가르 산성이었다. (프라탑가르라고 읽는건지 아닌지는 정확지 않다.)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택시에 탔는데, 내가 인도에서 가장 놀랬던게 교통이었다. 사진을 보라. 분명 일차선 도로인줄 알았는데 맞은 편에서 차가 오는 걸 보고 질겁했고, 택시 기사가 그런 상황에서도 빵빵거리고 추월하는데 또 질겁했으며, 맞은 편 택시도 그렇다는 사실에 한 번 더 질겁했다. 최악의 상황은 이쪽과 저쪽에서 모두 추월을 시도하는 바람에 상대편 택시와 정면 충돌을 가까스로 벗어났던 두 번의 경험이었는데, 찍지는 못했다. 완전 식겁했다. 이런 도로를 평균시속 70km/h 로 브레이크 없이 달린다고 생각해봐라. 해발 1000m 고원에서 안전막도 없는데 그렇다 달리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5m 앞에서 발견할 때의 기분.
이걸 혼자 보기 아까워서 찍어놨다. 완전 이니셜 D가 따로 없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주욱 밀리는 데, 브레이크도 밟지도 않는다. 처음엔 식겁했는데 가면 갈수록 재밌어-_-진다. 어쨋거나 달리고 달려서 산성에 도착했다.


산에 올라, 정문이다. 이곳 마하발레슈와르에서는 큰 전쟁이 세 번 있었는데, 종족 전쟁이 두 번, 영국이 한 번 쳐들어 왔다고 들었다. 이 산성은 역시 방어용이라 입구는 좁고 입구 맞은 편에는 감시용 초소가 있는데 좁은 길을 올라오다 맞은편 초소에서 쏘는 화살에 맞고 많이 죽었다고. 근데 올라가는 동안 계속 느낀건데 뭐하러 여길 쳐들어왔을까? 도대체 어떻게 싸움을 했을지 상상도 안된다. 이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오면 꼭대기에는 병사들이 활을 들고 기다리다니. 전에 읽었던 책에서, 성이 1만 명의 군사에 상당한다더니 맞긴 한가보다.


올라가는 길에는 인도 내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를 두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인이라고 친절히 이야기해줬다. 그런데 이놈들아, 왜 자꾸 차이니즈라고 해!


사진을 확인하고 있는 조슈아 라판. 방을 같이 썼다. 미국인 포닥이며 KITP에서 일하고 있다. 마누라는 생물학 박사학위과정 중이며, 생물학 전공이다보니 하루만 연구실을 비워도 세균들이 다 죽어버리느라 같이 못 왔다고. 이완 맥그리거를 닮았다. 성격이 좋고, 나이는 29. 마누라와 만난지 한 달도 안되어 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두 달 동안 메일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알아갔다고 한다. 지금은 서로 5천 km나 떨어져 지내는, 근데 매일 아침 저녁 메일을 확인한다. 마누라한테서 온 메일을 열어보며 싱긋 웃는 훈남. 


무슨 사원인줄 알았더니 기념품 파는 가게. 오벨리스크(가 맞나?)가 멋지게 세워져있었는데 이런.




올라가는 길은 이렇게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음식을 판다. 워낙 높은 곳이라 그런지, 장사치들은 아예 여기서 산다. 집이 있고, 가게가 있고 사람이 있다. 뭘 파는지 몰라서 사먹을 수가 없었다. 별로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낮에는 햇빛 아래 있으면 너무 덥다. 25도 까지 올라간다는데, 한 번도 벗지 않았던 셔츠를 벗고 올라갔다.



난 굽는 여인. "난"을 굽고 있다. 저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니. 붓고 뒤집고 뒤집고.


정말 이 동네는 높다. 해발 1000m 정도는 족히 되어보인다. 실제로 그러니까.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있고, 아래 분지에는 작은 마을이 하나씩 있다. 우리가 간 곳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 중에 하나. 보면 알겠지만 지층이 아주 예쁘게 쌓여있다. 여기가 인도의 중서부 정도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높은 산들이 올라가 있을까?





이 동상은 씨받이(쉬바지) 장군의 것이란다. 어감이 좋진 않지만, 쉬바지 장군은 이곳을 지켰던 장군이었던 것 같다. 가이드가 뭐라고 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깃발이 꽃혀있는 곳을 들렀는데 어떤 아이가 들꽃을 팔고 있었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생각없이 살 뻔했다. 그냥 사줬어도 되는데 아무 생각없이 아이를 보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네. 열살이 채 안되어보이는데, 꽃도 아니고 그냥 들풀을 꺽어다 팔고 있었다. 하나 사줄껄 그랬다.


씨받이 장군에게 경의를 표하는 거라는데, 옆에서 한국인들은 "고대랑 자매결연맺은거 아니냐"고. 기합이 우렁차다. 


원숭이가 의외로 많았다. 놀랐다. 이어서 소 풀뜯어먹는 사진. 이 소는 장식용 꽃더미를 그냥 먹는다. 이어서 "하트놀 부인"이 이 소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했는데 찍진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석양이 지는, 해가 뜨는 곳을 잘 볼 수 있는 지점 중에 한 군데에 들렀다. 그러니까 학회 담당자가 이곳을 거쳐서 가도록 준비를 해줬다. 관람소같은 곳이 있는데 양 옆은 완전 절벽이다. 탁트인 들판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완전 도봉산 산책로다. 어떤 외국인은 그 절벽에 앉아서 책을 보더라. 그림은 멋진데, 꼭 그렇게 책을 보고 싶을까? 문화적인 차이인가보다. 다행히 그는 물구나무를 서진 않았다. 간담이 서늘하더군.


인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걸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하라면,

언제나 들려오는 음악.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카레. 난폭한 택시. 향신료와 향 내음. 하층민의 생활, 신분제로 인한 저임금-하인 급의 일자리. 특별히 내가 간 마하발레슈와르는 깍아지는 산맥. 순박한 사람들, 뚜렷한 이목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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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광현
여행2010/01/30 20:47
이번엔 잡다한 내용을 좀 올려본다. 숙소 사진과 식사. 전에 말한대로 호텔 식당은 채식만 나왔다. 감자와 빵 종류가 많이 나왔고 기타 야채들이 볶고 삶고 튀겨서 카레와 함께 나온다. 그럭저럭 먹을만했는데 마지막 날에 아주 고생을 했다. 음식 맛들이 강해서 배가 너무 아프기도 했는데. 흠. 숙소는 괜찮았다. 물도 잘 나오고. 아침 7시에서 9시 까지만 따뜻한 물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그 시간에만 불을 때서 물을 끓이는 모양이다. 다른 시간대에는 그냥 찬물만 나온다. 따뜻한 물을 받아서 찬물과 섞어 매일 아침 씻었다. 아마 다른 인도인들은 따뜻한 물을 쓸 일이 없겠지.

집시족들이라고 한다. 집시의 어원이 인도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라는데, 미국으로 넘어가며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곳곳에 공사 중,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끼어사는 모습이 보인다.

이날 즈음해서 축제였는지 집 앞에 어떤 문양을 그려놓은 걸 봤다. 뭘까. 인도에는 역시 종교가, "힌두"만해도 신의 종류가 대단하다. 아마 사진은 가네샤가 아닐까. 크리슈나-시바 로부터 기타 현신(아바타)들. 음. 내가 아는건 어려서 봤던 퇴마록에 기록된 신들, 인드라-바즈라-아그니 등등등.
돌아오는 길에 호텔 앞 호수에서 경치가 좋길래 담아왔다. 밤에 나가서는 별자리를 볼 수 있었는데 맨눈으로 플레아데스 성단을 봤던 기억이 난다. 푸른 구름에 덮인 세 개의 빛나는 별. 오리온이나 사수자리는 아주 뚜렷했고, 안타레스도 보였던 것 같다. 윤석이 형이 알려줘서 알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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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광현
여행2010/01/23 20:10
인도의 마하발레슈와르에 다녀왔다. 학회가 있었지만 틈틈히 밖에 나갔다 왔는데, 잠깐 적어볼까한다. 뭄바이에서 남서쪽으로 280km 정도 들어가면 산맥이 시작되는데 이곳이 Mahabaleshwar 다.

호텔에서 했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었다. Fountain hotel.


이곳은 5대 강의 수원지이며 유명한 관광지인데, 최정상은 해발 1500m 정도라고 한다. 팡크가니(Panchgani)가 가까운 관광지이고, 푸네(Pune)는 그나마 가까운 대도시. 기후 때문에 딸기가 많이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장에는 딸기를 엄청 팔더라. 내가 갔을 때는 아침기온 15도에 점심기온 25도 였다. 습도는 높은 편이 아니라서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첫 날 저녁에 학회장을 빠져나와 마을 구경을 갔다. 근처 마을은 저녁에도 사람이 그득했는데, 인도인들은 저녁 늦게까지도 잠 안자고 나다니더라. 인상적인 건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 음악시디파는 가게, 신발가게. 왜 이렇게 신발을 많이 파는 걸까. 나도 하나 샀다. 280루피에.



다음날,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간다. 식당의 모습. 이 식당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다. For Veg. 한 이틀이나 삼일은 그런지도 모르고 먹었다. 나오는 음식이 빵 구운거, 식빵, 야채들을 튀기고 볶고 조리고 삶아 - 갖가지 양념으로 무쳐내 나오거나 양념을 곁들여 나오는 식이라서 대채롭다. 고기를 못먹었다는 인식을 못하고 있다가 어느 누군가의 지적에 의해 그동안 고기를 못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곳이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인 것을 알게 되었다. -_-;



다음날, 세시에서 여섯시 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물론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겠지만 나와서 구경하는 것도 즐거움이니까. 전날 떠났던 마을로 출발.
저녁에 봤던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날이 꽤 좋았고 어제 걸었던 길이 이 길이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딸기와 딸기를 건너서 시장은 길었다. 종로 5가에서 4가 정도를 걸어 3가에 이를 때 쯤,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는 완전 낡아서 털털거리는데 사람들은 꾸역꾸역 타고 간다. 시동 걸면 검은 연기가 푸르륵하고.







기저기 보이는 식당들. 그리고 신기한게 여긴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한 교통수단으로 말을 타고 다니는 걸까. 가끔은 할아버지들이 말을 태워주고 돈을 받는 걸 봤는데 이 사람들도 그런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마을 어귀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을 만났다. 이름은 Jaysigh. 10분에 100루피. 흔쾌히 수락하고 그렸다. 사진은 전에 올렸으니 뭐. 결과적으로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좋은 추억이다. -_-; 그리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구경해주셨다. 동물원 원숭이가 되었지만, 구경하던 애들하고도 같이 한 장 찍고 재밌었다. 여기 사람들은 친절하고 구김이 없고 낯선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이 참 맑다. 아이들은 예쁘다.

이 아저씨는 길가는데 나를 붙잡더니 사진 좀 찍어달라고. 이 사람들은 나를 알지도 못하는데다가 내 사진기에 찍혀도 어차피 자신의 사진을 얻지도 못하는데 찍어달라고 한다. 애들은 그렇다고 해도 어른들은. 그래서 같이 찍자고 하고 어색하게 한 장. 찍고나니 내가 꿀리냐. 얘네들은 왜 이리 시원시원하게 생겼어.

이 애들은 나를 잡아먹겠다는게 아니고 좋다고 달려든거다. 오해하지 말고, 낫으로 나를 찍어버리겠다는게 아냐.







물은 긷거나 물통에서 받아서 먹는다. 시장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동네가 있다. 아이들은 뛰놀고 남자들은 앉아있다. 여자들은 설거지나 빨래를 한다. 물을 긷거나 아이들을 보고 있다. 옛날 시골 동네에서 농사만 안 지으면 딱 이정도인데.




축제가 있었나보다. 멀리서 북치고 사람들이 소리지른다. 따라갔다. 손으로 북을 쳐대는데 아프지도 않은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음날이 축제란다. 무슨 축제냐니까 연날리기 축제라고. 아, 그래서 아까 마을에서 어떤 아이가 연을 날리고 있었나? 오 그럼 내일은 재밌는 일이 있겠구나. 내일은 꼭 마을에 다시 나와봐야지. 그 축제전날 행열에 도로는 마비되고 차들은 길에 주차되어 있었다. 음, 그러니까 시장 쪽 도로만. 그렇게 기대하고 좋은 정보를 가지고 돌아와 내일을 기다렸지만 다음날 별다른 축제는 없었다. 실망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어떤 종교에 관한 축제가 아닐까라고 한다. 다른 종교의 사람들은 그런 축제는 완전 관심이 없나봐. 너무 다양하면 그 다양함에 오히려 무관심해지겠지. 내가 물어본 사람은 모슬렘이었다.


숙소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크리켓을 한다. 어딜가나 크리켓. 공과 라켓, 운동장만 있으면 열이고 스물이고 달라붙어 할 수 있는 크리켓. 아이들은 다들 크리켓을 한다. 골목마다 배트를 들고 휘두른다. 노을지는 저녁에 마지막 크리켓, 이 경기가 끝나고 해산하는 아이들을 보며 숙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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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광현
영화2010/01/23 00:07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영화를 봤다. 뭄바이-홍콩은 비행기가 좋은 거(새거)라서 장치가 좋아 골라볼 수 있었고, 홍콩-인천은 옛날 비행기라서 정해진 시간에 영화가 시작하고 끝나면 그냥 끝난다. 채널을 선택해서 보는 건데, 뭄바이-홍콩 비행기에서 제일 처음 본게 GI죠 였고 이어서 본게 Love happens 였다. 문제는 한 이십 분 정도 남기고 착륙 준비를 하느라 영화를 볼 수 없게되었는데 다음 비행기에서는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봐야해서. 음, 근데 이게 문제도 아닌게 두 번 봐도 재밌을 거 같아서 걍 봤다. 게다가 쌩으로 자막없이 (중국어 자막) 듣기만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김에 두 번 보자 생각했다.

아론 에크하르트, 제니퍼 애니스턴.

주인공들이 완전 훈남에 훈녀다. 흠. 재밌게 봤는데 로맨틱 코메디야 뭐 내용은 거기서 거기라 굳이 스토리 공개를 꺼릴 것도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흐.

영화내용 열어보기


누나 가슴에 삼천원 쯤은 있는거라고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슬픔은 근데 지나고 지나도 잘 아물지 않는가보다. 자식을 잃고 아내를 잃고. 내가 인간사에 관한, 특별히 상처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각할 것도 돌아볼 것도 많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여운이 남기도 하고. 그냥 영화관에서 시간을 죽이기 위한 영화, 치고 부수는 종류의 영화도 요즘엔 좋아하는데 그건 순전히 오락적인 면을 강조하자는 거고. 슬픔과 고통이 없을 수 없다면 어떻게 마주하느냐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당당한 애니스턴과 약간은 관조적인 아론.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언제일까. 상대편의 무조건적인 호의가 자신의 상처를 파고드는 것을 느낄 때 누구나 움츠러든다. 상처를 치료하려면 우선 꺼내봐야하니까. 그 자체가 싫어서 도망치다가 결국 곪고마는 경험을 누구라도 해봤을 거다. 연인이건 가족이건, 무조건적인 호의는 사랑에 기반하지 않고는 나오지 않는데 그런 사랑마저 저버린다면 누가 그에게 손을 내밀까. 다행히 많은 경우는 그런 호의에 보응해 서로 보듬어주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중이 제머리 못 깍는다고 본인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채 사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을까. 그래도 영화는 행복한 결말이라 다행이다.
Posted by 조광현
일상2010/01/21 22:53

여행 후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언제나 편하지만 이번은 더 편하다. 학회 마지막 날에 너무 아파서 고생을 했기 때문일까.

화요일에 감기가 왔는지 오한이 심해서 일정은 다 넘기고 그냥 누워서 잤다. 이불 두 개를 덮고 입고 갔던 파카를 꺼내서 덮어서 누워 덜덜 떨면서 뒤척거리다가 위를 찌르고 뒤집고 비트는 아픔 속에 잠들어 땀 범벅이 되어 일어난 뒤 포풍SS를 하고 고생을 했더니만. 다행히 약을 먹고 택시와 비행기 안에서는 무난히 보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택시 짐칸에 앉아 흘러가는 인도의 풍경을 보며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 마음이 착 가라앉았는데 서울에 와서도 공항 버스에 몸을 싣고 노래를 듣는 순간까지도 내려앉은 기분이 그대로다.

잊기전에 링크나 걸자. 좋은 정보다. 시라즈 미누왈라(Shiraz Minualla)의 초끈이론 강의 동영상. 차근차근 봐야지. 아마 폴친스키 책을 기반으로 한 거 같은데 재밌겠다. 미드 보는 기분으로 하나씩.
Posted by 조광현
여행2010/01/16 11:28
어제 일식이 있었다. 부분일식이었는데 한시 반 쯤. 이번 학회 관련자들은 참 친절하고 부지런하다. 아마 군타 교수가 그런 것 같다. 일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능한 여러 준비를 해줬다. 그래봐야 뭐, 현상된 필름 가져다주거나 디스켓 안의 자기기록부를 떼오는 정도지만. 
이것도 필름을 손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렌즈 앞에 고정시키고 고생하며 찍었다. 역시 장비가 없으니. 초점이 안맞아서 멀리 산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찍고. 똑딱이는 어쩔 수 없다니까. 무한대 고정 초점+필름 고정을 그냥 손으로 하니. 그래도 모양은 잘 나온 편이다. 거의 절반 정도는 먹은 것 같다. 인도의 남부 지방은 개환일식도 볼 수 있다 하던데. 오늘은 여행을 간다. 지금 인도 시각은 오전 8시. 점심 먹고 근처로 떠난다는데 다섯 시간 정도 소요될 거라고. 
Posted by 조광현
여행2010/01/15 14:05
학회 일정이 빡빡하긴 한데, 중간에 시간을 내서 잠깐 나간다. 시장이 있고, 시장에는 사람이 있다. 시장 근처엔 마을이 있고, 마을엔 사람이 있다. 아이들은 크리켓을 하고 뛰어다니고 앉아있다. 시장에서 초상화를 하나 그렸다. 10분, 100루피. 화가와 같이 사진을 찍다. 

다시 드는 생각은 아 나참 못생겼네. -_-;
Posted by 조광현
학회2010/01/12 01:49

아 완전 피곤. 비행기에 버스에 다 합쳐서 총 32시간 정도 걸려 도착했다. 여기는 마하발라슈바르, 인도. 


집 출발 (한국 10일 오전 6:30) - 공항도착 후 탑승 (오전 9:30) - 이륙 (오전 11시) - 홍콩 도착 (홍콩 10일 오후 1시 45분) - 홍콩에서 델리로 (홍콩 10일 오후 6시) - 델리도착 (델리 10일 오후 9:30) - 이륙 (델리 11시) - 뭄바이 도착 (뭄바이 11일 오전 1:30) - 짐 찾고 공항 밖으로 (뭄바이 11일 오전 3시) - 차로 이동 호텔 도착 (11일 오전 9시) 


한국에서 비행기 연착(이유는 모름, 도로가 언 것 같았다) - 홍콩에서 비행기 놓침 - 홍콩 현지시각으로 5 30 인도항공의 비행기를 케세이 퍼시픽에서 예약 - 그 비행기 연착 - 델리에서 사람 싣고 싣고 그리고 연착

인도 항공(Air India)는 연착이 생활인가보다. 여긴 오후 10시 20분, 근데 한국 시간으론 새벽 한시 50분. 30분 단위로 시차가 나다니. 이번 인도행은 정말 많은 걸 겪었다. 연착과 연착과 연착에 뭄바이에 잘 뻔도 했지만 다행히 차가 와서. 꽤 피곤하구나. 시장에서 슬리퍼를 샀다. 한화 6천원정도, 280루피. 자야겠다.

Posted by 조광현